제목: 평화광장 2006.11.6.월
탐진최씨(耽津崔氏)
탐진최씨의 시조 최사전(崔思全)은 해주최씨의 시조 최온의 증손자다. 그는 1126년 권신 이자겸이 궁궐 법을 범하고 권세를 부리자 인종과 협의하여 이자겸의 심복 척준경을 설득, 그로 하여금 이자겸을 제거케 했다. 그 공으로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고 탐진백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본관을 탐진이라 했다. 탐진은 전라남도 강진군에 속해 있던 옛 지명이다.
시조의 아들 최변과 최열 이하의 기록은 문헌이 실전되어 각파 중시조들의 세거지를 따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화성파는 중조 최응규가 고려 때 중서령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손자,증손자 대에서 계속 벼슬길에 오른다. 강진금천파의 중조 최준량은 생원으로 우문관 대제학에 추증된 인물이다.
만경파의 후손 가운데 최학령은 중종 때 진사로 정시문과에 장원했으나 어사의 홍패에 틀린 글자가 있다며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으로 일생을 마쳤다.
조선 성종 때 최부는 금남파의 후손이다.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의 편찬에 참여한 그는 1487년 부친상을 당해 배를 타고 제주도에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온갖 고난을 겪는다. 그 뒤 왕명으로 <표해록(漂海錄)>을 저술, 중국 연안의 해로, 기후, 산천, 도로, 풍속, 민요 등을 소개한다.
탐진최씨는 2000년 현재 68,127명이다. 주요파는 ▲화성파 ▲강진금천파 ▲만경파 ▲보성조내파 ▲광주성서파 ▲금남파 ▲만경율리파 등이다.
전북 옥구군 임피면 술산리,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석천리, 충남 예산군 광시면 노천리, 충남 청양군 대치면 농소리, 경남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 전남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호리, 전남 담양군 수북면 남산리, 전남 강진군 강진읍 송덕리 등이 집성촌이다.
'다이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내삶의 전부를 눈물로 채워도 ....나훈아 (0) | 2006.02.07 |
---|---|
이마음 다시 여기에 / 노사연 (0) | 2006.01.27 |
[스크랩] 그대에게 (0) | 2005.10.11 |
안양1지구 연수 (0) | 2005.08.27 |
제주도 09:50~10:30 (0) | 2005.06.22 |